트럼프가부처다
자비의 보관을 쓴 시대의 데바닷타
우리는 이 거친 반면교사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관세음보살의자비로운보관아래트럼프의얼굴이합성된기묘한불화를마음속으로가만히떠올려본다. 자비와평정을상징하는백의관음의유려한옷자락위에붉은넥타이를매고특유의단호하고거친표정을짓고있는도널드트럼프의얼굴. 누군가에게는신성모독처럼보이고, 누군가에게는냉소적인정치풍자로비칠이이질적인결합속에서나는역설적이게도불교가말하는가장처절한화두를마주한다. '도대체부처란누구인가?'
천수경(千手經)을펼쳐십악참회(十惡懺悔)의원문을한자한자소리내어읽다보면, 수천년전고대인도에서기록된경전이아니라 21세기미국의백악관과유세장을중계하는활자처럼다가온다.
十惡懺悔 (십악참회)
殺生重罪今日懺悔 (살생중죄금일참회)
偸盜重罪今日懺悔 (투도중죄금일참회)
邪婬重罪今日懺悔 (사음중죄금일참회)
妄語重罪今日懺悔 (망어중죄금일참회)
綺語重罪今日懺悔 (기어중죄금일참회)
兩舌重罪今日懺悔 (양설중죄금일참회)
惡口重罪今日懺悔 (악구중죄금일참회)
貪愛重罪今日懺悔 (탐애중죄금일참회)
瞋恚重罪今日懺悔 (진에중죄금일참회)
癡暗重罪今日懺悔 (치암중죄금일참회)
몸과입과뜻으로짓는이열가지악업은트럼프라는인물의공적궤적과놀랍도록선명하게겹쳐진다.
거짓을참말처럼당당하게밀어붙인수많은발언들은망어(妄語)의전형이고, 스스로를천재라칭하며번지르르하게과장해대중을현혹한수사는기어(綺語)다. 인종과계층, 국경을갈라 '우리'와 '그들'을끊임없이싸우게만든편가르기는양설(兩舌)의극치이며, 정적과약자를향해거침없이쏟아낸조롱과멸시는악구(惡口)의생생한교본이다.
그의내면을추동하는동력역시다르지않다. 부와명예, 권력의스포트라이트를향한끝없는집착은탐애(貪愛)요, 자신에게반대하는이들을결코용납하지않고복수심을불태우는적대감은진에(瞋恚)이며, 객관적이성과진실을거부한채아집에갇힌세계관은치암(癡暗)의어둠그자체다. 여기에사적스캔들로얼룩진판결들과법치적규범을무시해온행보들은신삼업(身三業)의그림자마저짙게드리운다.
이토록십악(十惡)을철저하게체현하고있는인물을두고어찌 '부처'라부를수있겠는가. 그러나불교의오랜지혜는부처가오직온화하고자비로운스승의모습으로만오지않는다고가르친다.
법화경에는붓다를끊임없이모함하고살해하려했던최악의배신자 '데바닷타(제바달다)'가등장한다. 세속의잣대로는용서받지못할악인이지만, 붓다는그를가리켜 "나를성불하게만든최고의선지식(善知識)"이라며장차성불할것이라수기(授記)를내렸다.
극한의어둠과악행을몸소보여줌으로써붓다에게자비와인욕의완성을시험하고증명하게해준 '반면교사(反面敎師)'의스승이었기때문이다.
트럼프가바로우리시대의데바닷타이자, 역설의부처인까닭이여기에있다.
골방에앉아천수경의십악참회를백번, 천번기계적으로외우는것보다, 백주대낮에온세상의이목을집중시키며십악을적나라하게전시하는한인물의말로와분열을똑똑히목도하는것이훨씬더서늘한각성을준다. "결코저길을따라걷지않으리라. 탐욕과분노, 거짓과갈라치기가영혼과사회를어떻게파괴하는지똑똑히보았으니, 내안의탐진치(貪瞋癡)를거두고말한마디, 생각하나를삼가리라."
그의행적을보며마음깊은곳에서터져나오는이준열한경계심이야말로살아숨쉬는참회다. 백권의경전을암송하는것보다, 그의파괴적인행보를반면교사삼아나의삶을돌이키는순간우리는진정한부처의마음에한걸음더가까워진다. 그는자신의온생애를던져 '악업의끝이무엇인가'를인류에게실시간으로시연해보이고있는혹독한 보살인셈이다.
역사의긴강물을조망해보면, 인류는언제나직선으로진보하지않았다. 두걸음나아가기위해한걸음물러섰고, 빛의소중함을뼈저리게깨닫기위해반드시깊은암흑의터널을통과해야만했다.
트럼프와같은극단적선동가가등장해세상을뒤흔드는것역시역사의퇴행이나파멸의징조가아니다. 그것은화려한번영의그늘아래오랜세월곪아터진불평등과소외, 문명사적모순을백일하에드러내는필연적인진통이다. 환부가겉으로터져나와야비로소근본적인치료가시작되듯, 그는인류사회가방치해온병리적민낯을강제로직시하게만드는독한백신과같다.
세상은언제나더좋아지는쪽으로도도하게흐른다. 광풍이지나가고나면우리는평화와절제, 상호배려와이성적인연대가얼마나값진공기였는지를다시금뼈저리게배우게될것이다.
자비로운관음보살의연화대위에올라앉은트럼프의형상은결코조롱이아니다. 지옥의고통을생생하게보여줌으로써마침내인간을각성시키는역설의성자, 더성숙하고지혜로운세상을낳기위해어둠의산파를자처한거친부처의모습이다.
오늘밤, 어지러운뉴스를끄고조용히합장해본다. 우리에게가장아프고도분명한화두를던져주고있는그거대한반면교사를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