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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환의 생활경제칼럼

유동환의 생활경제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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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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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04
모나미 주식회사 - 역사적 사실과 개인적 회고의 균형

모나미 주식회사

역사적 사실과 개인적 회고의 균형

 

한국의 장수 브랜드]⑤하루에 20만개 쏟아진다…국민볼펜 '모나미' | 중앙일보

자료 :1960-70년대 모나미153볼펜 신문광고

 

얼마전한국뉴스스페이스기성 종합 일간지에서국민볼펜의두얼

굴이라는제목의주식회사모나미관련기사를접했다. 모나미는필자에게젊은날잊지못할깊은인연이깃든회사이기에자연스레눈길이머물렀다. 그러나기사를읽으며필자를놀라게한대목이있었다. 모나미의창업자가오직故송삼석명예회장한사람으로만기록되어있던점이다.

필자가기억하는모나미의출발점은분명이용섭사장이었다. 잊힌역사의

편린을바로잡기위해기록을되짚어보았다.

 

대외적으로는모나미 153볼펜을개발하고기업을키워낸

송삼석(1928~2022) 회장이독보적인;창업주로알려져있다. 그러나법인

설립과회사의태동기를거슬러올라가면실질적인원(原) 창업주는상공부

관료출신의이용섭사장이었다.

 

1955년, 모나미의전신인문구수입유통무역회사‘광신산업’을일군

이사장은서울대상대를졸업한유능한청년송삼석의자질을높이사“회사

지분 10%를주겠다”는파격적인대우로상무이사로영입했다. 이후 1960년

광신화학공업사로사명을바꾸고제조업에뛰어들어 1963년대한민국

최초의볼펜모나미 153의신화를일궈냈다. 자본과인재, 통큰지분

분배가빚어낸성공적인동업의출발이었다.

 

그러나 1974년가을, 커다란변곡점이찾아왔다. 당시문구유통업계의

관행이었던무자료거래와이중장부문제로국세청과검찰의대대적인

조세포탈수사가시작되었고, 회사는당시자본금을상회하는 7억 5천만

원의막대한추징금을부과받으며존폐의위기에몰렸다.

사태의법적처벌과책임은오롯이대표이사였던이용섭사장에게

집중되었다. 이사장은전과와함께경영일선에서쓸쓸히퇴진해야했다.

 

반면, 20년간자금과살림을총괄해온송삼석전무는사재를털어추징금을

납부하고회사를살려낸‘구원투수’이자, 기도원에서회개하여정도경영을

결단한‘의로운경영자’로거듭났다.

 

1970년대압축성장기한국기업사에서는세무조사와정권의사법압박국면에서동업관계가깨지고

2인자가 1인자를대신해경영권을독식하는비사가비일비재했다.

이용섭사장은역사속에서탈세로몰락한경영자로지워졌고,

살아남아기업을지배한송삼석전무는지분을독점하며오늘날까지

볼펜의신화이자정도경영의표상으로미화되었다. 오랜세월회사의

살림을함께했던동업자가한순간에단독구원자로변모하고모든과오는

퇴출당한 1인자에게만지워진현실은, 냉혹한기업권력투쟁의단면을

적나라하게보여준다.

 

하지만카나다에서 55년간생활하며캐나다WIN/WIN습관에읽힌필자는묻고싶다.

과연,

그지난한동업자투쟁에서진정한승자와패자가존재할수있는가.

애초에하나의꿈을품고시작했던동업이란본래한몸이었기때문이다.

 

필자는 1971년캐나다로이주하기전인 1969년, 이용섭사장댁에서차남과

장녀의가정교사로소중한인연을맺었고, 장남과는막역한친구로지냈다.

 

1978년재회했을때이회장께서는필자에게“자네는남의밑에서만일하지말고꼭자네사업을하라”는큰가르침을주셨다. 그조언에힘입어필자는캐나다에서성공적으로비즈니스를일굴수있었고, 은퇴한지금은독서를즐기고세계여행을다니며토론토에서칼럼니스트로활동하고있다.

필자의삶에자립의불씨를지펴주신이용섭회장님의은혜를반세기가지난지금도잊지못한다.

 

1978년이후안타깝게도소식이끊겨오랜세월그가족들을기억에만남겨두었다.그러나이용섭회장이없는모나미회사의현주소를찾아야했다.

 

 

오늘날디지털태블릿과스마트폰의보급, 초저가중국산공산품의공세속에서중저가볼펜산업은구조적인한계에직면해있다. 몽블랑처럼독보적인 '명품헤리티지'나 '기호품' 영역을구축하지못한범용필기구기업모나미의상장역사와최근재무상태, 지속가능성분석을 살펴보았다.

 

1. 모나미의주식상장배경

상장일:1974년 6월 26일 (한국거래소유가증권시장 / KOSPI)

역사적아이러니:모나미는 1974년 6월코스피에상장했다. 앞서알게된 탈세수사와내부고발사태가터진시점이바로상장직후인 1974년 10월이었다. 상장으로기업공개(IPO)를마친직후거액의세무조사와경영권격변이연이어터졌던것이다.

 

2. 최근 3개년연간실적 (Annual Statements, 연결기준)

모나미는현재심각한실적둔화와구조적적자늪에빠져있다.

구분

2023년

2024년

2025년

매출액

1,415억원

1,331억원

1,310억원

영업이익

-23억원 (적자)

-38억원 (적자)

-59억원 (적자)

당기순이익

-57억원 (적자)

-53억원 (적자)

-107억원 (적자)

영업이익률

-1.60%

-2.87%

-4.47%

(출처: 모나미공시연결재무제표기준)

매출감소세: 2023년 1,400억원대에서 2025년 1,310억원수준으로매년외형이축소되고있다.

적자폭확대: 3년연속영업적자와순손실을기록하고있으며, 특히 2025년에는순손실이 100억원을돌파(-107억원)하여수익성이급격히무너졌다.

 

3. 재무적지속가능성 (Financial Sustainability) 평가

"중저가문구의화석화"현상이모나미의재무제표에그대로반영되고있다.

 

디지털화와중국산저가공세에따른본업침체:

학교와직장의필기문화가태블릿과전산으로급격히이동하면서국내문구수요자체가줄어들었다.

남아있는저가시장마저알리익스프레스·테무등중국산초저가문구류가잠식하여, 마진율이높은펜판매가불가능해졌다.

 

어설픈프리미엄전략의한계:

모나미역시몽블랑이나파카를모방해 '153 리미티드에디션(메탈볼펜)'이나고급만년필라인업을시도했으나, 153 볼펜특유의'서민적·일회용' 이미지를벗겨내지못해프리미엄명품시장안착에는실패했다.

 

신사업난항과지속가능성위기:

문구업의한계를돌파하기위해화장품 OEM/ODM 제조(모나미코스메틱)와반려동물사업등에진출했으나, 기존강자들이즐비한시장에서뚜렷한실적을내지못하고적자폭만키우는원인이되었다.

연속적자로인한현금흐름악화, 재고자산부담, 3세경영승계과정에서의지배구조이슈(오너리스크) 등이겹치면서기업의지속가능성은창사이래가장중대한시험대에올라있다

1970년대이용섭회장없이 일가독점지배체제를세워화려하게계승자의잔치를벌였을지모르나, 세월이흘러시대의거대한파도(디지털전환과글로벌공급망변화) 앞에서는그누구도영원한승자로남을수없다는비즈니스의엄정한법칙을모나미의현주소가증명하고있다.

 

동업자간의분쟁에는결국승자도패자도없고, 남는것은이익을 낼수 있는상품과서비스뿐이다.

donyoo
유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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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4
비트코인의 상품성 가치

 

비트코인은 신기루(워렌 버펫)

 

모바일뱅킹 등 인터넷을 이용하여 세계 시중은행과 상존 경쟁하며 제공하는 금융서비스를 핀텍(FINTECH, Financial Technology)이라 한다. 현재까지 세계에 알려진 50여개의 핀텍금융사들은 인공지능, 자동화된 로봇공정 그리고 블록체인 등의 테크널로지를 이용한다.

 

핀텍의 원조, 하왈라

8세기 중동, 북아프리카 및 인도지역에서 교역지불금으로 하왈라(Hawala) 금융제도를 이용했다. 하왈라란 예를 들어 인도의 A교역상이 페루시아의 B거래상에게 교역금 지불시 인도 거주 하왈라 거래인 C에게 인도화폐를 지불한다. C는 페루시아 거주 하왈라거래인 D에게 편지로 거래사항을 알리면 D는 B에게 수수료를 제하고 환전한 페루시아 화폐를 지불한다(아래 도표참조).

 

 

 

 

오랜 역사를 가진 하왈라 거래인들은 절대적인 신용거래로 현재까지 하왈라 금융거래를 하고 있다. 이들은 빈민국 이민자들이나 노동자들이 본국으로 송금시 0.5%의 저렴한 수수료를 내고 하왈라를 이용하고 있다. 은행은 최고 15%의 수수료를 받고 있다.

돈이 움직이지 않고 송금이 가능하기 때문에 2001년 이후 알케이다 테러분자들이 하왈라를 이용한 돈세탁을 하는 사실이 발각되어 UN산하 모든 국가들이 통제하고 있다.

필자는 2005년경 하왈라 금융거래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에 의해 전자거래로 대체될 수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동포신문에 올린 적이 있다.

몇 년이 지난 2009년 MS사 대신 일본의 사토시 나카모토에 의해 비트코인이 하왈라의 금융거래를 전자거래로 바꾸어 출시된 후 많은 핀텍회사가 속출하여 하왈라가 이들의 원조가 되었다.

 

비트코인의 상품성 가치

2009년 1월 3일 0센트로 시작한 비트코인이 2021년 2월 21일 미화 5만7,489 달러로 거래 되었다가 25일 50,717달러가 되었다. 변동성 등락이 심해 지난 12여 년간 개미투자자들의 희비곡선을 반복시키고 있다.

2월 8일 테슬러 전기자동차 CEO인 일런 머스크는15억 달러의 비트코인을 구입했다. 그 후 비트코인의 가격이 20% 이상 급등했다가 머스크가 비트코인 가치가 너무 높은 것 같다고 트위터에 올린 글이 15%의 폭락을 초래했다.

일부 투기자들은 2021년 비트코인 가치가 20만달러까지 오른다고 예견하고 있다. 욕심많은 투기자들이 더 많이 모이면 그 이상도 될 수도 있다.

현재 6800억달러의 시장가치를 갖고 있는 비트코인은2020년 8월28일자 포브스지에 의하면 중국인들이 약 65%의 비트코인을 채굴한다고 발표했다. 머스크가 투기를 하기 전까지는 중국의 국내경제가 불안정하거나 중국자본가들에 대한 공산당의 탄압이 심해질 경우 비트코인이 상승하는 것과 연관이 된다고 본다.

워렌 버핏, 빌 게이츠, 제넷 옐렌 미 재무장관은 비트코인은 다른 화폐에 비해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다. 또한 중국인들의 자산 해외도피용 수단이나 검은 돈의 안식처가 되는 용도 외에는 지폐처럼 교환수단이 될 수 없다는 그들의 결론이다.  

예를 들어 금이나 은은 물질적 가치를 보존할 수 있기 때문에 투자보존가치가 있고, 지폐는 국가의 신용이 바쳐주어 국가의 경제만큼 안전하고 저축에 대한 이자도 받을 수 있지만, 비트코인은 복잡한 프로그램 소프트웨어 외에는 가치가 없다는 사실이다.

비트코인이 투자대상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주식투자와 달리 경제성장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또한 100만개의 비트코인을 소유하고 있는 사토시의 정체가 알려지지 않아 많은 의구심을 일으키고 있다.

따라서 비트코인은 투기자들이 공포에 의한 매도를 시도할 경우 0달러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결론이다.

비트코인 투기에 관심을 끌게 하는 상품성은 힘들이지 않고 부를 누릴 수 있다는 환상에 의한 비생산적인 욕심이라 정의할 수 있다.

 

 

 

donyoo
유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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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4
필리핀 국민의 본국 송금

 

1961년 한국 국민의 1인당 국민소득은 94달러, 필리핀의 해당액은 267달러였다. 1966년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 대표로 마닐라에서 열린 월남 참전7개국 정상회담에 참가했다. 타국 정상들이 차지한 호텔방보다 가장 작은 방을 배당 받아 치욕적인 외교 대우를 받을 때 한국의 1인당국민 소득은 133달러, 필리핀은 200달러였다. 5년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41% 성장할 때 필리핀은 36% 하락했다. 2020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0,644달러 필리핀은 3,000 달러로 10배 차이가 난다.

 

1969년 신동파가 이끄는 한국농구대표팀이 아시아의 거성인 필리핀 농구팀을 95대 86으로 격파하여, 아시아 농구 정상자리를 차지하였다. 이를 지켜본 농구의 나라 필리핀 국민은 신동파를 신격화시켰다. 그 후 신동파는 필리핀의 국빈대접을 받았다.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이 한국보다 잘 산다고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주지도 않고 무시했던 것과 너무 대조적이다. 나이 50세 이상 되는 캐나다 거주 필리핀 이민자들은 신동파를 알고 있다. 9년 전 건축공사관계로 문제가 되었을 때 필리핀계 인스펙터가 와서 까다롭게 굴었다. 얘기 끝에 필자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인스펙터가 신동파를 아느냐고 물어보길래 그는 나와 동창이라고 말했더니 친절하게 건축공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까지 가르쳐주며 토론토시의 인스펙션을 짧은 시간내 통과시켰다. 그가 마지막 한 말이 생각난다. 신동파는 필리핀에서 농구의 신이고,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을 경제대국으로 만든 경제의 신이라며 한국인들은 운이 좋다고 했다. 한국에 관심이 많고 아는 것이 많은 필리핀 지식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021년1월 31일 CBC방송은 필리핀계 캐나다인들이 2019년 10억 8천만 달러를, 2020년 10억7900만달러를 모국에 송금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이 돈은 필리핀에서 어렵게 사는 부모, 친척들에게 생활비, 학비, 병원비 등을 위해 보내진다고 한다. 캐나다, 미국, 한국을 포함하여 전세계 선진국으로 퍼져나가 궂은 일을 맡아 장시간 노동의 대가로 필리핀인이 모국에다 보내는 돈은 년간 420억8천만 달러. 필리핀 국민총생산의 10 %가 된다. 현재 필리핀계 캐나다인 인구는 83만7,130명이다. 캐나다에서 보내는 송금을 필리핀계 인구수로 나누면 남녀노소 1인당 약 1200달러를 매년 보내고 있다. 그들 중 저소득층 남자들은 청소, 경비, 운전사, 식당, 공사장 등에서 막노동을 하고 여자들은 가정부, 간호보조원 등의 직업을 갖고 저임금으로 두 잡을 뛰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들은 어렵게 번 돈을 모국에 보내는 것을 숙명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송금하는 만족감을 느낀다고 한다.

 

계약으로 일하는 노동자, 유학생, 이민자뿐 아니라 국내에서 태어난 2세, 3세들도 필리핀 모국에 송금을 한다고 한다. 또한 일부 2세, 3세들은 왜 송금을 해야 되느냐고 부모 또는 조부모들과 다툰다고 한다. 수입에 따라서 격주에 200달러, 크게는 2천 달러를 현재같이 코로나로 힘들 때도 보낸다고 한다. 미국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1960년대 두 번째로 잘 살았으나, 마르코스를 비롯한 지도자들을 잘못 만나 빈민국이 되어 해외에 나간 국민들이 보내는 외화의 규모가 커도 경제개발을 못하고 있다. 특히 마르코스는 미국의 식민지정책으로 필리핀이 잘 살았던 역사를 깨닫지 못하고 반미 정책과 부정부패로 경제를 몰락시켰고, 2016년 10월 두테르테는 미-필 해군합동작전을 취소하고 중국에 붙었다가 필리핀 해양국토를 중국에 빼앗기는 위기를 만들었다.

 

한편 1963년부터 1977년까지 서독에 파견된 2만8천명의 간호사 및 광원은1억 달러 이상을 한국에 송금했다. 또한 독일정부에서 4천만 달러의 차관을 받아내게 했다. 1965년부터 1973년까지 31만 여명의 월남참전용사의 전투수당은 미국으로부터 차관까지 합쳐 약 50억 달러가 된다. 박정희 경제국부는 이 외화를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경제개발에 사용하여 한국이 세계10번째 경제대국이 되는 초석을 만들었다. 그러나 필리핀의 사례를 보면 고질적인 중국의 영토침략을 방비하는 한미합동 군사작전 없이 한국의 안보와 그에 따르는 경제가 보장될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donyoo
유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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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19
코로나19 역병으로 인한 모기지 연기

중국 우환에서 발생해 세계적 역병이 된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세계인들은 몸살을 앓고 있다. 역병에 대한 치료제나 예방접종이 개발되기 전까지 역병전염 방지를 위해 각국은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을 채택하고 코로나19가 수그러지길 기다리고 있다.


이로 인해 세계인들은 새로운 생활양식을 맞게 되고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경제변화를 체험하고 있다. 국내인 경우 3월 1백만 명의 실업자가 속출하였다. 이에 대한 대응정책으로 연방정부는 저소득층 상대로 앞으로 예산 250억 달러를 책정하여 4개월간 1인당 2천 달러의 비상대책금을 주고 있다.


직장을 잃은 국내인들의 가장 큰 재정적인 문제가 집 모기지 지불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고 시중은행들은 대응책으로 모기지 지불금을 6개월까지 연기해주고 있다. 일부 국내언론들은 시중은행들이 코로나19을 통해 이익을 낸다고 모기지 이자를 받지 말라고 민심을 동요시키고 있다.

 

이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은행은 주로 저축액과 융자금 이자차액으로 이익을 내어 국가경제에 이바지하고 있다. 만약 시중6대 은행들이 6개월간 복리 이자를 받지 않는다면 연 3%의 이자를 가정했을 때 1.6조 달러가 되는 국내 모기지의 이자는 240억 달러 이상이 된다. 시중6대 은행 연 소득 423억 달러의 56 %가 된다. 이는 은행이 감당할 수 없는 손실이라 할 수 있다.

 

모기지 전략


이번 코로나19으로 세계는 물론 국내경제 미래를 가늠하기 불가능 내지 쉽지 않은 과제가 되었다. 따라서 소비자는 모기지 지불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는 전략을 아래와 같이 모색할 수 있다.


1. 모기지 원금상환 기간 연장(Refinancing on Longer Amortization)

 예를 들어 2015년 5월에 10만 달러의 모기지를 연 이자 3 %, 25년 원금상환으로 매달  473달러를 5년간 냈을 경우 원금은 8만8,555달러가 된다. 같은 이자로 매달 473달러를 20년간 내면 원금이 완납된다. 이 방법대신 같은 이자로 30년 상환 모기지로 갱신하면 월 372달러로 줄일 수 있다.


2. 모기지 지불 연장(Deferred Mortgage Payments)

 위의 경우 8만8,555 달러에 대한 모기지지불금 473달러를 6개월간 지불연장 할 경우 6개월간의 이자 1,337달러를 가산하여 원금은 8만9,892달러가 된다. 6개월 후 같은 이자로 30년 원금상환 모기지 갱신을 하면 이자와 원금을 합친 모기지 불입금은 378달러가 된다.

원금 상환기간이 30년으로 된다는 심리적 부담이 될 수 있지만 모기지 불입금의 현재가치는 점차 줄어들어 인플레 3%를 가정하면 378달러의 24년 후 가치는 189달러가 된다.

 월 473달러를 6개월간 불입을 하지 않은 총 2,838달러는 비상금으로 TFSA 구좌에 적립하면 된다. 모기지가 10만 달러보다 클 경우 위 분석숫자는 비례적으로 계산하면 된다.

 예를 들어 모기지가 50만 달러일 경우 5배를 곱하면 된다. 이 전략은 이번 비상시에 큰 도움이 된다.

 

경제침체가 6 개월 이상 연장될 경우


소비자들이 모기지불입급을 내지 못하게 되면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같은 사태가 올지 모른다. 미국은 이미 이로 인해 부동산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이에 대한 구제 정책으로 캐나다 연방정부는 은행 및 금융기관에 모기지 디폴트보험을 들게 하여 경기가 부활될 때까지 모기지 이자만 받게 해야 할지도 모른다. (Mortgage Default Insurance, CMHC Insurance: 소비자가 모기지 지불금을 내지 못할 경우 모기지를 내준 금융기관을 보상해주는 보험).


모기지 이자만 낼 경우 위 분석에서 월불입금은 221달러가 된다. 물론 모기지 디폴트 보험비는 모기지를 가진 소비자가 내게 되더라도 모기지 원금 상환을 뒤로 미루면 어려운 상황에서 모두 소생할 수 있다고 본다.


빨리 오는 것은 빨리 가버리는 순리를 생각하며 오로지 6개월 내에 코로나19이 수그러지고 경제회복이 V자의 곡선이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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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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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5
유동환의 돈 이야기(65)-창살 없는 감옥을 찾는 국제 고아들(3)

 

 

결국은 돈


우리 한인사회가 무궁화요양원을 구입하지 못한 이유는 모금액이 3백만 달러가 채 못되고 운영 이익금에서 모기지 페이먼트틀 감당할 수 있는 구입액이 제한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860개의 새로운 침상 허가를 받은 중국인사회는 현재 1,172개의 침상을 가진 중국인요양원을 운영하고 있고 입주 대기기간은 1년이다.


 반면에 무궁화한인요양원 입주 대기기간은 7년이다. 즉 한인 노인들이 무궁화요양원 입주 대기 중에 비한인요양원에서 사망할 확률이 약 90%가 된다. 중국의 이홍쎈터는 한국을 포함한 동남아 출신들의 요양원 공동설립을 도와주고 있다. 투자는 소속된 동남아계 단체들의 몫이지만 요양원 이름은 이홍센터(Yee Hong Center)로 하는 조건이다. 


즉 그들이 부여 받은 라이선스와 노하우로 요양원 없는 커뮤니티를 도와주고 정부에 등록은 그들 단체의 이름으로 한다는 것이다. 역력히 중화사상의 뿌리를 실행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만약 무궁화요양원의 21년간 한인 전용이 불가능했다면 또는 조성준 장관의 정치적 영향과 2년간 쌓아놓은 인수위원들의 노하우 경험이 없다면 필요한 모금이 이루어졌어도 이홍쎈터의 제안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이 심각한 현실은 각 커뮤니티 공동체의 힘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고 그 힘은 결국 돈에서부터 나온다. 

 

한인요양원의 꿈을 키우는 길


첫째, 한인요양원을 위한 재단이 세워져야 한다. 재단이사회는 일시불로 10만 달러를 기부하던지 년 1만 달러씩 10년을 기부하던지 일부 일시불과 합쳐 10년 안에 10만 달러를 기부할 수 있는 이사들을 모집한 후 그들로부터 약정을 받고 재단 이사회를 결성한다. 


재단이사회는 요양원 설립 및 운영을 위한 비전(Vision Statement)과 미션(Mission Statement)와 퀄리티(Quality Statement)를 명확히 공표한다. 재단이사회는 기금마련의 중임을 맡고 목표액을 설정하여 매년 모금운동을 한다. 


두 번째, 구성된 재단이사회는 운영이사회를 선임한다. 운영이사회는 관리회사를 고용하여 사업계획과 예산을 인준하고 재단이사회에 보고한다. 관리회사는 요양원설립에 필요한 토지를 구입하고 정부 침상 라이선스를 받고 건축설립과 운영에 대한 사업계획과 예산을 세워 운영이사회의 인준을 받고 운영책임을 완수한다


셋째, 온타리오 한인동포는 한인요양원 설립 및 운영을 위한 온주 범 한인 모금운동에 참여한다. 한인회를 포함하여 각 단체 및 협회들과 종교단체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절대적으로 모금운동에 뒷받침 되어야 한다.


넷째, 제반 재무와 행정은 웹을 통해 투명화 한다.

 

천당과 지옥을 가르는 10불 모금 운동


온주 한인 인구 10만 명을 잡으면 2만 5천 가족이 된다. 한 가족당 매년 120달러 즉 월 10달러만 적립하면 숫자상으로 300만 달러가 매년 모아진다. 매년 200만 달러만 모아도 8년 안에 한인요양원 설립 및 운영이 가능하다. 


어느 한 노인은 주류 양로원을 거쳐 무궁화요양원으로 입양한 후 두 요양원의 생활경험 차이를 지옥과 천당으로 비유했다. 이 노인의 경험은 젊은 자녀들의 미래가 될 수 있다. 


한인 가족 모두가 참여해야만 되는 월 10달러의 기부금은 미래 한인노인들의 지옥과 천당을 가르는 힘을 갖고 있다. 고맙게도 연 120달러를 기부할 경우 국세청은 최고 60달러까지 세금환불을 해준다. 

 

알리고 실행하면 행복이 찾아온다


사업의 성사는 필요에 따라 실체파악과 문제해결을 위한 계획의 정보수집 및 해결책을 공유하여 관여된 사람들의 과감한 실천의 결과로 결정된다. 따라서 한인요양원 필요성의 실체파악과 미래를 만드는 해결책을 공유하고 이에 필요한 모금운동 참여가 창살 없는 감옥을 찾는 국제고아들을 구하는 길이다. 


생로병사는 인간을 포함한 만물의 생태가 아닌가. 우리는 알아야 한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장기 요양자들을 돌봐주면 우리에게 행복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한인요양원을 방문하면 자녀들이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자녀들도 자기생활에 바쁘기 때문이겠지요. 부모들이 위생시설이 잘 갖추어진 요양원에서 한인 간병전문인들의 도움을 받고 영양 있는 한식과 한인 동료들과 오락 및 운동으로 여생을 지낼 수 있게 해준다면 자주 찾아오지 못하는 자녀들의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다고 봅니다.) 

 

 

donyoo
유동환
75214
62970
2019-09-04
유동환의 돈 이야기(64)-창살 없는 감옥을 찾는 국제고아들(2)

 

인간의 존엄성


비한인요양원에 입양된 한국노인을 방문할 경우 건물 층수에 따라 대소변이 천에 절인 냄새를 맡게 된다. 위생과 간병이 철저하게 관리되는 무궁화요양원과 다르다. 


정신이 건강하고 육체적으로 불편한 노인의 말을 들으면 비한인 요양원에서 말이 통하지 않아 대소변의 표현을 못하여 하루에 기저귀를 두 번밖에 바꿔주지 않기 때문에 의식이 있어도 조절을 못하면 대소변을 장시간 피부에 대고 생활을 하며 고통을 겪는다는 것이다. 


피부가 헐면 연고만 발라주고 또 고통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의식이 없는 치매환자는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러한 문제가 해결돼도 입맛이 달라 한식을 먹고 싶은 욕구가 생기고, 더 나아가서 주위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이러한 가장 기본적인 세 단계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인간은 존엄성을 상실하게 된다. 이들의 존엄성은 인간의 존엄성이고 한국노인이라면 한인 모두의 존엄성이다. 

 

남성보다 여성


장기요양 기준은 의식을 갖고 의사소통을 하며 잠자고 일어나서 옷을 입고 움직이고 화장실 변기사용, 샤워, 식사와 용변을 가리는 생활에, 노환이나 질병 또는 사고로 장애를 받아 사망 전까지 24시간 보호가 필요한 상태로 결정된다. 


2011년 캐나다 통계청에 의하면 65세 이상의 국내인 5백만 명 중 장기요양이 필요한 요양원 입주 인구는 7.9%로 2001년 통계 7.4%보다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국내인의 수명은 1971년 이후 매년 2-3개월 증가하고 있다. 수명이 길어짐에 따라 장기요양인구도 증가하고 있다. 85세 이후의 국내 인구는 30% 이상이 요양원 신세를 져야 하는 통계를 보여주고 있다. 


국내인 장기요양기간은 남녀평균 약 8년으로 남성이 평균 4년, 여성이 평균 12년, 즉 여성이 남성보다 두 배다. 

 

비주류계 요양원 설립의 책임


주류 요양원 입주자들은 주류 사회가 책임지기 때문에 온주정부의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다. 국내 비주류 입주자들은 보이지 않는 국가의 국민이 책임져야 한다. 따라서 요양원에 입주해야 하는 한인 노인들은 온주정부의 지원으로 한인사회가 책임져야 한다.


이는 우리 자신을 위한 책임이라는 숙명감을 필요로 한다. 또한 이 숙명감을 주위 한인들에게 알려야 하고 알리는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무궁화요양원을 인수하기 위해 모금운동을 했던 2년 전인 2017년에는 새로운 요양원 라이선스를 취득하는 길이 없었기 때문에 무궁화요양원이 자금력을 내세운 다른 소수민족, 특히 중국, 인도, 베트남 민족에게 넘어갈까 염려되어 한인들은 350만 달러를 3개월 만에 모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무궁화요양원을 인수하지 못할 경우에는 다른 길이 없었기 때문에 모금한 돈을 기부자들에게 돌려주기로 하였다. 그러나 2018년 2월 온주 자유당은 10억 달러의 예산을 책정하고 향후 10년간 소수민족요양원을 위한 침상 3만개의 라이선스를 부여하기로 했고, 2020년까지 5천 개를 부여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2018년 3월초 소수민족들에게 라이선스 신청을 받았다. 이에 인수위는 시급히 만반의 준비를 하여 침상 40개를 기존 무궁화요양원 2층, 3층에 확장하는 신청을 했지만 요양원 구입을 전제로 하였기 때문에 구입 후에 고려해보겠다는 온주정부의 보류소식을 받았다. 


반면 중국인 사회는 두 자선단체를 통해 침상 860개의 라이선스를 받는 쾌거를 올렸다. 무궁화요양원 인수를 계속 추진 중이던 인수위원회는 이번 2월 영리회사에 밀려 한인이 원하는 대로 안됐지만 무궁화요양원 입주자들과 한인 대기자들은 향후 21년간 한인 전용이 보장되었고, 21년 후 한인에게 넘어올 수도 있는 과정이다. 노력을 하다 보면 항상 기회가 찾아온다. 


조성준 장관의 로비활동과 2년간 쌓아온 인수위의 경험과 노하우가 주정부로부터 인정받아 기금만 준비되면 한인사회는 침상 128개의 라이선스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이로 인해 8년 안에 총 188개의 침상을 가진 한인양로원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렸다.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환불 받는 것이 최선인가


지금 인수위는 환불을 시작하여 12월 말까지 환불을 마감한다고 했다. 그러나 적지 않은 기부자들은 애초부터 환불을 원하지 않았다. 가장 아름답고 눈물 날 정도로 고마운 뉴스는 신중화 사업가가 환불대신 기부금 50만 달러를 한인사회를 위해 사용하라는 애족심 이었다. 


캐나다처럼 경제가 안정된 나라에서는 빈부차이 없이 1달러 버는 것은 똑같은 노력이 필요하다. 돈이 많아서 50만 달러를 기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속담에는 99석하는 부자가 가난한 농부의 1석을 뺏어 100석을 채운다고 하지 않았던가. 신중화 사업가는 보이지 않는 나라를 세우는데 앞장선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일단 모인 돈 350만 달러는 보이지 않는 한국을 세우는 플랜B의 종자돈이 될 수 있다. 환불 받는 것이 우리의 밝은 미래를 만드는 것인지 재고해 볼만하다. (다음 호에 계속) 
 

 

 

donyoo
유동환
75116
62970
2019-08-21
유동환의 돈 이야기(63)-창살 없는 감옥을 찾는 국제고아들(1)

 

무리를 이루는 만물

 


미세한 먼지도 끼리끼리 모인다. 보리와 쌀은 같이 자라지 않는다. 개미와 벌들도 섞어 살지 않는다. 코끼리, 사자, 하이에나, 늑대 같은 맹수는 물론 순록, 임팔라 등도 그들끼리 집단생활을 한다. 참새, 오리, 기러기 등도 마찬가지. 만물의 영장 인간도 집단생활의 역사를 만들고 있다. 집단생활의 목적은 생존의 욕구이고 이를 위해 그들은 같은 음식과 의사소통을 필요로 한다. 


보이지 않는 국가


캐나다정부의 노후 장기 요양대책은 주류사회를 이루는 영국계 국내태생의 노인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한편, 캐나다는 200개 이상의 민족들이 살고 있다. 특히 이민자들은 그들의 고유한 음식과 언어로 생활하고 있다. 건강할 때는 그들의 민족단체에 참여할 수 있고 그들의 음식으로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일단 장기요양이 필요할 때가 되면 그들은 주류사회의 양로원에 입주되어 여생을 지내야 한다. 이들의 음식과 언어 습관이 주류사회와 달라 고통을 받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온주정부는 소수민족 요양원 설립을 장려하고 있다. 


중국계 이홍센터 정보에 의하면 토지를 구입하면 한 개당 30만 달러 정도되는 침상설비비용의 70% 정도를 온주정부의 보조로 양로원 건립 및 운영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100개의 침상을 갖추는 양로원을 설립할 경우 땅을 제외하고 3천만 달러의 설치비가 필요하다. 이중 9백만 달러만 모금되면 한인양로원 설립 및 운영이 가능하다. 


이로 인해 유태인을 포함한 유럽제국 이민자들은 물론 일본, 중국, 인도, 월남 등을 포함하는 소수민족단체들은 그들의 민족 양로원을 번창시키고 있다. 이 비영국계 양로원은 캐나다 국내에서 보이지 않는 국가라 할 수 있다.


창살 없는 감옥을 찾는 국제 고아들


주류사회 양로원에서 살다가 무궁화 양로원에 입양된 노인들은 천당이 따로 없다고 표현한다. 그래도 한인들이 몰려 있는 주류사회양로원은 말이 통하는 한인들이 있어 다행이다. 이 양로원 입양대기 중 임시 양로원에 머물렀던 노인들은 주류인들과 함께 살았던 기간을 창살 없는 감옥의 수감기간으로 표현한다.


한인들이 모여 사는 주류사회 양로원 방문시 혼자 휠체어를 타고 하루 종일 창문 밖을 쳐다보는 한인 노인들을 보면 누구든지 한민족을 위한 양로원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고유의 소수민족 양로원이 없는 민족의 노인들은 장기요양이 필요할 때 국제 고아가 되어 주류사회의 양로원에 입양해야 하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


윤정림 전 무궁화양로원 대표와 정창헌 피커링토요타 대표의 공덕으로 개원하여 운영되던 무궁화양로원은 파산 후 매입과정에서 영리기업의 입찰참여로 가격이 상승해 한인이 원하던 인수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인수를 하는 영리투자회사는 인수위 요청에 의해 향후 21년간 한인을 위한 양로원으로 계속 운영하겠다고 구두 약속했다.


라이선스 자체가 한인공동체 앞으로 나왔기 때문에 21년 후 한인사회가 재정적으로 준비되면 매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추진위는 조성준 장관의 협조를 얻어 온주정부에 무궁화양로원을 한인을 위한 요양원으로 명시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다행히 정민화 원장은 탁월하고 효율 있는 운영관리로 이익을 내기 때문에 경영회사는 물론 투자가들이 다른 민족을 받아들일 확률은 없다고 봐야 한다. 이로 인해 발등에 떨어진 불은 꺼졌다고 볼 수 있다. 얼마나 다행인가.


오로지 칭찬만 하자


미생물도 칭찬하면 번창한다. 1.5세로 이루어진 무궁화양로원 추진위원회를 마음으로 후원해준 한인들은 그들이 참신하고 정직과 투명성을 강조하는 윤리강령을 필요로 하는 평균 연수입 수십만 달러의 전문직업인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경비 약12만 달러는 법에 의해 서류준비 비용 및 입찰에 들어가는 외부전문인의 비용이고, 2년간 행정원 보수 2만 달러는 자선단체가 법적으로 채용해야 하는 규정사항에 의해서였고, 7천불이 조금 안 되는 모신문사 광고비용. 많은 행정업무를 한달 1천 달러도 안되는 적은 보수로 이 계통에 석사학위를 받은 적법자를 고용할 수 있었다. 


참고로 이홍 중국파운데이션을 비롯해 유나이티드웨이 등의 국내 대형 모금자선 단체들은 수입의 30-40%를 연 경비로 사용하고 있다. 100회 이상의 모임과 5천회 이상의 이메일, 수만 페이지의 서류검토를 무료로 봉사하고 0.8%도 안 되는 약 2만7천 달러의 경비로 350만 달러를 모금한 이번 인수위는 캐나다국가 이름으로 마땅히 칭찬을 받아야 한다. 


동포사회에 이들에 대한 불신이 일자 김은희, 김도헌, 강대하, 박진동, 최성학, 린다 유, 이지연 등 인수위원들은 깊은 상처를 입었다. 사실을 알려고 공청회에 참가한 구자선 평화식품 대표는 모든 경비가 투명하고 자기 돈 써가며 봉사해온 거룩한 애족심의 화신인 인수위의 위상에 고마움을 느끼고 눈물을 훔쳤다고 말했다. 오로지 칭찬으로 인수위의 용기를 북돋아주어야 한다. (다음 호에 계속)

 

 

donyoo
유동환
74946
62970
2019-08-08
유동환의 돈 이야기(62)-미합중국의 건국 국부들(13)(The Founding Fathers of United States of America)

 

조오지 워싱턴(4)

 

워싱턴가문 문장


12세기 영국 더햄 카운티 워싱턴 올드홀에 간직된 워싱턴 가문의 문장은 17세기 미국으로 전해졌다. 1777년 프란시스 합킨스가 고안한 미 성조기는 미 독립전쟁시 13주를 대표하는13개의 빨간색과 흰바탕 줄과 왼쪽 위에 푸른색 별13개가 그려졌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미 성조기가 워싱턴 가문 문장에서 비롯됐다고 공표했다. 

 

조오지 워싱턴 고별사


총 32 페이지 7600단어에 달하는 워싱턴 고별사는 1796년 9월 17일 아메리칸 데일리 어드버타이저에 10회에 걸쳐 게재되었다. 미합중국 역사상 미국민의 자유와 국익을 위한 최상의 에세이로 알려진 이 고별사는 1862년 이후 미 상원에서 국경일로 채택한 워싱턴의 생일 2월 22일 매년 낭독되고 있다.


2019년에는 2월 25일 네브라스카주 피셔 상원에 의해 크게 낭독되었다. 낭독시간은 평균 40분 이상 걸린다. 미 상원은 이 고별사를 낭독하면서 고별사 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을 의무로 다짐하고 있다. 


이 고별사는 워싱턴 지시에 의해 서문은 제임스 메디슨, 본문은 알렉샌더 해밀턴에 의해 쓰여졌고, 미국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들로 하여금 솔선수범하게 하여 미국민의 모범이 되게 하고 있다.


서문


서문에서 워싱턴은 원래 초대 대통령 4년 임기로 1792년 은퇴하려고 했으나 건국국부들의 100% 권유에 의해 미 건국의 초석을 더 다져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재임을 하게 되어 20년간 미국을 위해 함께 봉사하게 해준 미 국민에게 정중한 감사를 표현하는 겸허함을 내용으로 하였다. 


본문


워싱턴은 본문에서 다음 여덟 사항을 강조하였다. 


1. 단결


당을 만들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고집보다는 국가의 이익을 위하여 애국심으로 단결해야 된다. 또한 국가분열은 국가를 파괴하는 가장 무서운 적이고, 유럽이나 세계역사에서 분열된 국가는 생존하지 못했다. (참고로 워싱턴 정부가 수립되면서 미 상하원 정치인들은 35개의 정당을 만들고 파벌정쟁을 하고 있었다.)


2. 중립외교


미국은 유럽을 포함한 제국들과 중립을 지켜야 한다. 국익을 위해 호의를 베푼 국가나 침략을 했던 국가와도 중립을 지켜야 한다. 과거에 침략을 받았다고 주적으로 만드는 어리석음은 국가 생존이나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거 동맹국 의무감으로 동맹에 매달리면 동맹국 전쟁에 휘말려 새로운 적을 만들게 된다. 


3. 연방제도


13개의 주정부는 연방정부와 연결고리를 맺고 연방정부에 세금을 납부하고 연방정부 군대로부터 보호를 받는다. 대서양 13주는 서부개척주를 지원해야 한다. 주와 주의 대립을 금지하고 연방정부와 단합해야 한다.


4. 경제부흥


북부주는 생필품을 만드는 제조업을 일으키고 남부주는 농업을 일으켜 남과 북의 상업을 번창시켜 미국경제를 일으킨다.


5. 군사력 강화와 국태민안


군사력 강화로 외세의 침략에 대비해야 하고 국제간 평화와 국내치안으로 미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6. 국민의 자유보장


헌법과 헌법의 정신을 준수하는 의무를 완성하고 권리를 보장받게 한다. 의무 없는 권리주장은 독재자를 낳을 수 있고, 방종된 국민들을 만들어 국가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의무를 앞세운 권리보장으로 후세들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7. 정직


정직은 가장 좋은 정책이다.

 

결론


워싱턴은 재임시 자신의 결함과 과오를 인정하고 그 결함과 과오가 국가발전에 지침이 되도록 국민모두가 애국심으로 단결하여 자유 정부를 지켜나가길 염원했다.

 

워싱턴 사망


워싱턴은 은퇴후 2년간 농장운영을 하며 여생을 지내다 1799년 12월 14일 마운트 버논 농장저택에서 3일 동안 앓던 목감기로 편도선이 막혀 사랑하는 부인과 친지들 앞에서 67세의 여생을 마쳤다. 죽음을 앞두고 그는 주치의에게 이제 내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라고 말했다.


12월 18일 장례식은 마운트 버논에서 기마병과 보병이 집결한 가운데 거행되었다. 이 소식은 곧 필라델피아 미 상원에 알려지고 12월29일 국장으로 미국은 비탄에 빠졌다. 리처드 헨리 리장군은 미국어린이들이 외우는 “ FIRST IN WAR, FIRST IN PEACE, FIRST IN THE HRARTS OF HIS COUNTRYMEN” 라는 찬사를 남겨 영웅의 공로에 고마움을 느끼고 미 건국국부로 받들고 있다. 

 

워싱턴 고별사를 따르는 민족


미국을 연구 분석한 명치천황은 워싱턴고별사의 가르침을 본보기로 삼고 일본을 통치하여 부국강병 정책을 성공적으로 일으켜 일청전쟁 일로전쟁에 승리하였고 일본을 세계열강에 올려 놓았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인들은 명치천황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그는 물론 계승되는 천황을 국부 이상 일본의 상징으로 추대하고 있다. 이로 인한 일본인들의 단결심과 애국심은 세계민족 중 일등국민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donyoo
유동환
74670
62970
2019-07-11
유동환의 돈 이야기(60)-미합중국의 건국 국부들(12)(The Founding Fathers of United States of America)

 

조오지 워싱턴(3)

 

 

(지난 809호에 이어)


미 연합군 총사령관


1775년 미연합국 총사령관이 된 워싱턴은 군사에 관한 책 다섯 권을 통독하고 향후 8년간 항상 솔선수범으로 총사령관 리더쉽을 보여줬다. 트렌튼 전투 공격시 델라웨어강 도강에는 선두에서, 롱 아일랜드전투 후퇴시 이스트 리버 도강에는 마지막 배를 타고 지휘하였다. 


워싱턴 부하들이 공포에 질려 후퇴할 때에 워싱턴은 적군 깊숙이 들어가서 지휘를 하여 그린장군을 비롯한 부관들이 워싱턴의 말고삐를 잡아 끌어와야 했다. 영국군은 80야드도 안 되는 사정거리 안에서 말을 타고 움직이는 워싱턴에게 사격을 멈추고 멍하니 쳐다보던지 정조준을 못하고 사격을 하였다.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고 연합군의 충성심과 사기를 북돋아 주었다.

 

밸리 포지


트렌튼 전투와 새라토가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워싱턴은 브랜디 와인 크릭전투와 맨머쓰 전투와 저먼타운 전투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필라델피아를 영국군에 내주고 20마일 떨어진 곳에 고지로 알려진 밸리 포지에 진지를 만들고 1777년 겨울을 지내야 했다. 


영국군도 새라토가 전투에서 버고인과 영국군 6천여 명이 포로가 되어 겨울이 지날 때까지 휴전상태를 유지했다. 워싱턴이 보강해준 아놀드군과 해밀턴군의 힘을 합하여 새라토가 전투에 승리한 게이트 장군은 이기심 때문에 워싱턴 총사령관을 건너뛰어 상원에 직접 보고하여 군기를 문란하게 하였다. 화가 난 워싱턴이 사임서를 제출하자 상원은 받아드리지 않았다. 


1777년 12월부터 1778년 6월까지 워싱턴이 이끄는 1만2천명의 미연합군은 식량과 의료 및 물품을 보급받지 못하여 영양실조와 비위생 시설에 의해 이가 들끓어 티프테리아 장질부사 이질, 결핵 등으로 2천명 이상이 사망했다. 


허기진 일부 군인은 가죽장화를 불려 삶아 먹을 정도였다. 밀가루 반죽을 불에 달군 바위에 구운 케이크로 연명했다. 군 봉급을 늦게나마 받으면 인플레로 종이조각같이 되어 고향에 남긴 가족들 생계문제가 되었다. 


이에 군 반란까지 일어났지만 엄격한 군율을 지키기 위해 주모자를 처형할 때에 워싱턴은 눈물을 감추어야 했다. 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스튜벤 독일 군교관으로 하여금 유럽식 전투를 연방군에 교육시켜 1781년 최후의 승리를 거두게 하였다.


미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등급 된 트럼프도 2019년 독립기념일에 밸리 포지 역사를 연설하며 미국은 불패의 국가라고 국민에게 상기시켜 애국심을 고취 시켰다. 

 

미합중국 헌법제정 위원장


1787년 워싱턴은 헌법제정위원회에서 위원장에 추대되었다. 원래 프랭클린을 추대하려 했지만 건강악화로 프랭클린은 워싱턴에게 양보했다. 프랭클린은 펜실베니아 대표로 연합정관을 참고하여 미 연방헌법을 재정하게 도와주고 워싱턴은 의견을 내세우지 않고 위원들의 의견을 받아드려 필요에 따라 수정 할 수 있게 미합중국 헌법을 통과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미 초대 대통령 


1779년 100%의 지지율로 미 초대 대통령에 당선된 워싱턴은 존 아담스 부통령, 벤자민 프랭클린 국무장관, 알렉샌더 해밀턴 재무장관을 중심으로 내각을 세우고 4월 30일 행정부를 이끄는 대통령 취임식을 가졌다. 연방 사법부를 세우고 헌법에 의하여 상-하원과 함께 각부처간 세력균형을 유지하였다.


미 국민의 자유 평등을 위한 자유헌장수정법을 만들었고, 1790년 재산소유에 관계없이 모든 백인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법을 통과 시켰다. 사업가들로 하여금 산업을 일으키게 하고 그들이 부담하는 세금으로 국가 세입을 올렸다. 


1791년 연방 부채를 해결하기 위하여 해밀턴이 제안한 연방은행을 설립했고 1792년 달러를 찍어 국채를 발행하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길을 열어 세계를 이끌어 가는 미합중국의 초석을 만들었다. 


군대를 만들어 연방정부 대통령이 군을 통치하게 하였다. 1793년 100%의 지지율로 재선된 후 유럽제국의 투쟁에 중간입장을 지키는 법을 세웠고 1794년에는 미 해군을 창설 하였다. 


또한 영국과 제이조약을 맺어 평화 화친을 이뤘다. 미 독립전쟁시에는 프랑스 루이 16세의 큰 도움을 받았지만 프랑스 혁명으로 루이16세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세계 최강국이 되는 대영제국과 손을 잡아야 하는 현실적인 결정을 한 것이다. 


이로 인해 친 프랑스파인 공화당의 토마스 제퍼슨과 제임스 매디슨과 항상 정적이 되었다. 무소속인 워싱턴은 알렉산더 해밀턴의 연방주의와 뜻을 같이 했지만 겉으로는 나타내지 않았다. 평화는 부국강병에 의해 유지되고, 자유는 투쟁을 통해 유지되고, 동맹은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냉철하게 결정된다는 사실을 워싱턴이 미 국민에게 확인시키는 교훈을 남겼다. 


그는 군 통솔뿐 아니라 행정에도 능력을 발휘했다. 새로운 법을 통과할 때마다 그는 부서 장관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들의 논쟁에 침묵을 지키고 그들이 워싱턴의 의향을 감지하게 유도하여 마지막 결정을 하였다. (다음 호에 계속)
 

 

 

donyoo
유동환
74482
62970
2019-06-27
유동환의 돈 이야기(59)-미합중국의 건국 국부들(11)



조오지 워싱턴(2)

 

 

(지난 806호에 이어)
주몬빌을 비롯한 프랑스사절단을 암살한 영국 식민지 워싱턴 민병대가 프랑스군대에게 항복하고 목숨만을 구하고 돌아간 사실이 유럽제국에 알려져 영국은 프랑스를 비롯한 적대국들에게 조롱감이 되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워싱턴은 재혼한 형수의 딸 사망으로 인해 유산으로 남긴 농장을 임대받아 마운트 버논 농장 일을 계속하였다. 


1755년 2월 영국은 프랑스군에 패배하여 빼았긴 오하이오 강 협곡 땅을 되찾기 위해 브래독 중장이 이끄는 영국 정기군을 파병하였다. 브래독은 지역의 지형을 잘 알고 그나마 22세의 젊은 나이에 전투경험이 있는 워싱턴을 계급 없는 부관으로 삼으려 하였다. 


처음에는 대령계급을 요청했다가 비웃음의 거절을 받았지만 콧대 높은 영국사령관에게 영국 전략을 배우기 위해 부관의 임무를 수행하기로 했다. 브래독은 유럽 재래식 전법을 응용하여 숲이 지고 협곡이 험악한 미 서부지역을 공병대를 이용하여 길을 닦으며 진군하였다. 


워싱턴은 나무 뒤나 바위에 숨는 인디언의 저격적인 기습작전에 준비해야 된다고 조언을 했다. 프랭클린도 워싱턴의 경험을 존중해라 했지만 브래독은 대영제국의 정예군과 오합지졸의 식민지 민병대와는 다르다고 고집을 부리며 포를 비롯한 중장비 운반을 계속하였다. 


하루에 고작 2마일의 행군은 험한 계곡에 봉착하여 말과 군인들이 지쳐 죽어 넘어가자 브래독은 워싱턴의 조언대로 3천명 중 800백 명을 선두로 보냈다. 6월이 되면서 워싱턴은 이질에 걸려 브래독을 돕지 못하고 후미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7월에 겨우 비틀거리며 회복이 되어 브래독을 도와 주었다. 7월 9일 1400명의 선두군대가 모노가엘라 강을 세 편대로 나누어 도강을 하였다. 워싱턴은 브래독이 이끄는 편대에서 진군하게 되었다. 


그러나 난데없이 나타난 인디언들의 공격으로 놀랜 영국군은 신출귀몰하는 인디언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워싱턴은 각개전투만이 승리를 할 수 있다고 조언하고 민병들은 워싱턴의 지휘아래 용감하게 싸웠지만 영국군들은 도망을 하거나 서로를 인식 못하여 총격을 가하기도 하여 영국군 약2천명이 사살되고 부상을 입었다. 


총격을 받은 브래독이 쓰러지자 워싱턴만 남아서 그를 끌고 마차에 실었다. 브래독의 명령으로 전령이 된 워싱턴은 12시간 말을 타고 임무를 완성하면서 타던 말 두 마리가 총에 맞아 쓰러지고 모자와 외투에 4개의 총알이 지나간 흔적이 나타나 후에 워싱턴은 불사조 영웅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브래독은 죽음을 맞이하며 23세 된 워싱턴의 책임완수와 용맹성을 세계에 알렸다. 영국이 대패한 후 프랑스와 영국은 전장을 유럽 및 아시아로 옮기면서 1756년부터 1763년까지 7년 전쟁의 역사를 만들었다. 


워싱턴은 자신의 오판으로 영불간에 전쟁을 일으켰다. 7년전쟁에 승리한 영국은 북미주 프랑스를 오하이오 벨리에서 북쪽으로 몰아냈지만 전비로 탕감된 국채를 갚기 위해 미국에 부당한 관세부과로 독립전쟁을 야기하였고, 워싱턴은 총 지휘관이 되어 프랭클린의 외교와 라파이옛트를 포함한 건국국부들의 애국심과 단결심으로 미국을 독립시켰다. 1755년 워싱턴은 대령으로 진급하여 버지니아주 군 총사령관이 되었다.

 

부호 농장주


1757년 워싱턴은 약 200에이커의 땅을 구입하고 로렌스 형의 유산인 농가를 호화주택으로 개조 하였다. 부호 커티스가의 과부가 된 말싸 커티스를 1757년 3월 아내로 맡기 위해 구애를 시작하여 결혼을 하게 되었다. 


말싸는 아들 존과 딸 팻시를 갖고 있었다. 말싸와 결혼으로 워싱턴은 말싸가 받은 커티스가 유산의 3분의1을 갖게 되었고 의부자녀들의 나머지 유산 재산관리인이 되었다. 


워싱턴이 소유하게 된 유산은 수천 에이커의 토지와 노예300여명이 포함되었다. 워싱턴은 형수의 유산과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의붓딸 펫시의 유산 등을 합쳐 약 7천6백 에이커와 약 5백명의 노예를 포함한 농장 외에 임대료 받는 토지 약 5만 에이커를 소유하여 2008년 세계100대 부호 중에 90번째 부호 순위에 올라 현재가치 2백억 달러 이상의 소유자로 미 역대 대통령 중 최대의 재산가로 알려졌다. 


워싱턴은 상류사회인들과 사교를 위해 호화스러운 파티를 즐겨 항상 돈이 딸려 빚을 지고 땅 일부를 팔던지 빚을 늦게 갚아 심한 인플레로 가치가 떨어진 원금을 갚았다.

 
담배농장의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목화, 밀 등 다른 농산품과 과일재배를 했지만 소비하는 만큼 큰 수입을 만들지 못했다. 그는 자신과 말싸의 사망 전까지는 소유한 노예를 해방시키지 말라는 유서를 남겼다. 노예를 엄격히 다루고 노예매매시 노예가족이 흩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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